서울 정동의 22만 평 땅을 거의 공짜에 파는 등 온갖 편의를 러시아에 제공했다.
그런데 조선의 속국화에 관심이 많던 리훙장의 반대로 교섭이 더디어지자 조선과 직접 교섭에 나섰다.러시아의 남진 부동항을 찾아라북쪽에서 바라본 거문도.
제정 러시아가 동북아 진출을 위해 거문도에 눈독을 들이자 영국이 이를 눈치채고 미리 점거해 동양의 지브롤터가 되어서다.2년 후인 1860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차지해 부동항을 확보했다.영국이 러시아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서 벌인 최초의 전쟁이다.
수에즈 운하가 완성되기 전까진 이탈리아·그리스·튀르키예 등 지중해권 나라가 여기를 통과하지 못하면 대서양에 진출하지 못했다.인천 팔미도 등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등대다.
그래서 영국은 2년 만에 거문도에서 철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은 극도의 무력감을 나타냈다.
이미 시작된 갑오경장의 개혁마저 뒷걸음쳤다.[사진 김정탁] 거문은 ‘클 거(巨)에 ‘글월 문(文)인데 여기에는 일화가 있다.
오른쪽 섬이 거문도항이 있는 고도다.왼쪽 다리가 동도와 서를 잇는 다리다.
아관파천 이후 조선에선 더 이상의 개혁은 고사하고.[사진 김정탁] 이런 상황인데도 조선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